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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삼강행실도에 기록 된 효행- 나주 나씨삼강문[ 羅氏 三綱門]

낚시고수 2016. 2. 7. 23:51

 

 전남 나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나주 남고문 가는 길목에 조그마한 정려문이 하나 있어 살펴보니 나주 나씨 삼강문이다. 나주나씨 나사침을 비롯하여 3대에 걸친 충신 2분 효자2분 그리고 열녀 4분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마을 입구에 세운 정려문으로 1947년 도로건설로 원래의 자리에서 약간 뒤로 옮긴 삼강문[羅氏 三綱門]은 1974년  새로 고쳐 세워져 이곳에 있다하고 한다.

 

 

羅州羅氏의 집안 정려문이기는 하나 요즘 같이 불신이 만연되어 "묻지마 살인"이 성행되는 흉칙한 세상과는 달리 충신, 효자,열녀에 대한  일이기도 하여 세상을 훈훈하게 했던시절도  예전에는 많이 있었구나 생각되어 여기 그 내용을 적어 보게 됩니다.  

 

 

 

이 삼강문은 羅州羅氏 직장공파의 한 집안에서 3대에 걸쳐 8정이 배출되어 이를 기리기 위해 나주시 남내동에 三綱門이 세워져 있다.  삼강은 유교도덕의 핵심인  삼강오륜에서 따 온 말로서, 나씨의 삼강문은 8정인 2효. 2충. 4열(2孝. 2忠 4烈)를 기리기 위한 정려(旌閭)다.

 

이 삼강문은 나주나씨일문의 금호 나사침을 비롯 3대에 걸친 2충·2효·4열녀를 기리기 위하여 세워졌다. 중종 39년(1544) 나사침(羅士沈)에 대한 명정(命旌) 이후 정조 3년(1787)과 순조 3년(1803)에 각각 충신 나덕헌, 나덕명이 명정을 받았다. 이들의 사적은 다음과 같다.


 


나사침(1526∼1596년)은 나주 출신으로 자는 중부(仲浮), 호가 금호(錦湖)로 이소재 이중호(1512∼1554년)의 문인이다. 16세 되던 해에 어머니가 병환으로 위급하자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봉양함으로써 위기를 넘기고 어머니의 병이 쾌유되었다 한다. 광해군 6년(1614)에 왕의 명으로 『삼강행실도』가 증보될 때 여기에 기록되었다. 그리고 나주 금호사에 배향되었다.


 


나덕명(1551∼1610년)은 나사침의 큰 아들로 자는 극지, 호는 소포이다. 기축옥사가 일어나자 종성으로 유배되었으나 임진왜란때 의병을 일으켜 많은 공을 세워 그 공으로 유배에서 풀려났다. 나주 금호사에 배향되었다. 나덕헌(1573∼1640년)은 나사침의 여섯째 아들로 자는 헌지, 호가 장암이다. 기축옥사에 연루되어 유배되었다가 풀려난후 임진왜란 때 공을 세웠다. 나주 금호사에 배향되었다.

 

나득소(1607∼?)는 나사침의 손자로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부 덕현이 죽자 3년 시묘하여 그 효성으로 인조조에 명정이 내렸다.

 

 

열녀하동정씨는 나사침의 넷째 아들인 나덕현의 처로써 정유재란에 적에게 쫓기는 몸이 되자 강에 투신하여 순절하였다. 이에 선조조에 정려가 내렸다.

열녀나주나씨는 나사침의 딸로 충의위 윤항의 처가 되었다. 정유재란때 하동정씨와 같이 강에 투신하였으며 선조 때에 정려가 내렸다. 열녀언양김씨는 나사침의 손자 나수소의 처로서 정묘호란 때 친가인 안주성에 피신하여 있다가 성이 함락되자 분신·자살하였다. 그 열행으로 인조조에 정려가 내렸다. 열녀나주나씨 : 나사침의 둘째 아들 나덕준의 딸로 임진왜란 때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끊었다. 이에 선조조에 정려를 내렸다.  이곳은  전남 나주시 남문동 15번지에 위치해있다 


 

출처 : 혜천의 여행흔적
글쓴이 : 바람흔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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